자유게시판

(2003-11-03 16:52:44)

이재훈

10월 글터 문학상 당선작^

은정이(97)가 4, 9월달 시중 추천한 시는
미립이 쓴 "시를 읽다"입니다.
미립(03)에게는 5,000원 상당의 문화상품권을
주도록 하겠습니다.

- 아래-

시를 읽다

미립

어느 이름없는 떨림이
울컥, 땅을 만들자
순수한 지렁이가 팔도 다리도 눈도
없이, 온몸을 뒤틀어
땅을 일구고
사춘기 소녀, 발그레한 볼, 여드름만한 개미의
세 쌍의 발이 부지런히
땅을 다지고
또 다지고
무(無)와 유(宥)의 디지털 신호처럼 반복되는
낮과 밤이 수 억년
그만큼 깊었던 바람의 고뇌가
이 옥토를 이루었도다

내 눈앞에 내 발밑에
쉽사리 펼쳐진 이 땅이 힘겹게 이루어졌음을 깨달음이라
이제껏 나는 이 땅을
한뼘 반의 작은 발로, 어깨너비의 보폭으로
성 큼 성 큼 걷고 있었다니!

미안한 마음에 발을 돌려
왔던 길을 다시 걷고
동서와 남북을 가로지르고
네 발로도 걸어보고
결국엔 이 감동의 대지에
온 몸을 던져
마음도 던져
큰 대자로 드러누웠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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