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터 졸업생들을 위한 공간,

(2005-11-06 15:48:21)

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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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이 계절

가을이 저물기 전에
― 스위트, 스위트 홈

우물 속에 빠진 한 남자와 걸었던
성당, 풀밭에 앉아
책장을 야금야금 찢어 먹습니다
그때 떠올랐던 시상(詩想)과
흘러가는 강물과
남자의 머리 위로 피어올랐던 담배 연기,

강물은 말합니다
모든 것은 이렇게
흘러가고 사라지는 것이라고,
한때는 내 몸을 따습게 해주던 빛나던 것들도
보석상자 안에 담아두듯
영원히 머물러 있게 할 수 없다고

붉고 노란 나뭇잎이
땅에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듯
모두 언젠가는 제 집으로 가야한다고,
모두 언젠가는 따스운
스위트, 스위트 홈으로 가야한다고

집 밖에 앉아 우두커니 해시계를 바라보던
시인, 릴케가 떠오릅니다
불우하고 음울했던 그조차도
가을이 저물 무렵에는
경건한 신성(神性)을 느꼈나 봐요

가을이 저물 무렵
난 릴케와 우물 속 그 사내에게
긴 편지를 씁니다
“당신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당신들은 지금 행복한가요?”
아니, 편지글이라기보다는 취조문장 같네요
좀 더 경건하게 시작할 편지글의 서두를 생각해 봅니다

｢가을이 저물 무렵
흘러가는 강가에 앉아
마리아를 새긴 성상과
꽃처럼 타올라 흔들리는 촛불 앞에서
당신들을 떠올립니다
해시계의 그림자를 쫓던 당신과,
늘 먼 산을 바라보던 당신과,

이제 당신들은 따습고 포근한
스위트, 스위트 홈에서 살고 있는지요?｣

가을이 저물 무렵
마리아를 마음속에 새기지 않은 사람들도
고개를 숙이고 하얀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눈물을 흘리고 싶어집니다
그건 왜냐면
가을이 저물기 때문이지요

쓸쓸하게
앙상하게
포근하게 말이지요


195	붉은 바람	이재훈	14/05/09	1868

194	이해인 : 길 위에서 - 『일년에 열두시인 3월』	이재훈	12/03/01	1866

	가을, 이 계절	모우	05/11/06	1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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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92 곽병훈 - 그네는 누가 미나요?	이재훈	17/01/05	1816

176	노가영 - 종분안에서의 단상	이재훈	21/02/2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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