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터의 졸업생들을 위한 공간,
커뮤니티 ♬
공지사항
글터뉴스
자유게시판
열린글
글터앨범
자료실
소모임 ♬
85~91학번
91~97학번
97~00학번
합평회
운영회모임방
작품노트 ♬
열린 詩+
글터괴수열전
옛날적이
산행기
today 1 | total 171806

(2004-10-07 18:05:22)
백사
차분히 읽어볼만한 듯.....
수구(守舊) 기득권 세력의 본질에 대한 小考
필명:먹물의가면   조회:591 점수: 추천:60/0날짜:10-06 15:58

There are three ways of ruining myself : women, gambling, and inventors.
The last is the least agreeable but most certain.
- Baron Nathan Mayer de Rothschild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수구적(守舊的) 성향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머니의 태교(胎敎)가 아무리 진보적이고, 물려 받은 유전인자가 아무리 리버럴하다 해도, 갓 태어난 아이는 어머니 자궁에서 타의에 의해 축출된 아웃캐스트(Outcast)와 같은 것이 아닐까요. 이 아이에게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수구적 가치(^^)는 어머니 자궁 안의 따뜻하고 안정된 환경이고, 그것은 이 세상 빛을 보는 쇼크 속에서 채 형성되지 않은 자아의 내벽(內壁)에 얇은 막으로 남는 것은 아닐지...


그에게 이 세상은 너무나 생경한 신천지이며, 생명의 본능은 살아 남기 위한 투쟁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그러한 아이가 이 세상에 대해 제일 먼저 시도하는 투쟁의 양식은 목청껏 울어 대는 것입니다. 바뀐 환경에 대한 불안과 불편함, 그리고 그 때까지 누리던 안락함을 갑자기 박탈 당한 것에 대한 저항의 표시이며, 기존에 누리던 것을 지키지 못한 좌절의 표시일 것입니다. 때로 태어 나 울지 않는 아가도 있다고 합니다만, 곧 산파나 의사의 손에 타격을 받고, 분노를 표시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해프닝의 순간은 지극히 짧은 것입니다. 아이는 이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반응하게 됩니다. 타고난 유전적 소질과 외계적 환경 요인은, 아이가 성장하여 죽을 때까지,단 한 순간도 그 상호작용(Interaction)을 멈추지 않습니다. 멈추는 순간을 우리는 기절했거나 죽었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인간이 어느 시점에서 표현하는 일정한 사회적 성향은 불변의 성질로 갖고 나온 것이 아니라, 이러한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하며, 고착되는 것이라는 상식을 말하기 위한 것입니다.


수구 또는 보수주의자와 진보 또는 개혁주의자의 본질적 차이


우리 사회는 지금 매우 가열된 대치 국면을 지나고 있습니다. 수구를 대표하는 면면이 있는가 하면, 개혁을 주창하는 면면들이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과거 수구세력의 편에 서있다가 개혁 진영에 가담하고 있는 자도 있고, 개혁적 성향의 소유자로 인식되던 자가 극렬한 수구 기득권의 대변인이 되어 있는 자도 있습니다. 수구와 진보는 이렇게 한 인간 안에서도 자리 바꿈을 할 수 있지만, 세대를 거치면서 형질 전환이 일어 날 수도 있습니다.


오늘 개혁을 주창하던 자가 권력을 잡은 후에는 수구적 기득권이 되어 개혁을 혐오하고 파괴할 수도 있으며, 오늘 수구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자의 아들이나 손자 가운데 대단히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인물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유전 형질적 대물림도 있지만, 환경적 돌연변이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토의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성향의 변화를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무엇인지를 다소 철학적 관점에서 살펴는 것입니다.


(보수와 진보의 차이를 역사적 관점에서 생각한 글이 서프라이즈에 있을 것입니다. 그때 저는 보수와 진보는 양면의 동전이 구르는 것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 오늘의 글은 이 동전을 공중으로 던져 항상 한 쪽만 나오도록 하려는 사기꾼들이 수구이고, 가끔 다른 면도 나와야 공정하다고 대드는 자들이 개혁세력이라고 정리될 것입니다 )


이분법적 사고에 대해


세상을 이해하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방편들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분법(dichotomy)의 합리성과 자연스러움을 믿는 사람이지만, 저는 그러한 분류의 완전성을 주장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때로 토론에 나와 이분법적 사고를 한다며 상대방을 질타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으며, 짐작컨대 식자층은 대개 이분법적 논리나 사고가 대단히 위험한 것처럼 간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 때문에 많은 일반인들이 가치 판단에 혼란을 겪고 힘들어 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논리적 유행(fad)이며 오류(fallicy)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상의 모든 영화를 명계남이란 배우가 출연한 영화와 출연하지 않은 영화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는 말은 대단히 정확한 것이며 하등의 논리적 오류가 없는 이분법인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색깔을 까만 색과 흰 색으로 나눌 수 있다라는 주장이나, 세상 모든 인간을 진보적 인간과 보수적 인간으로 나눌 수 있다는 주장 따위는 명백한 오류이거나 논리적 완결성을 증명하기 힘든 것입니다. 이분법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구분 대상의 선정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호흡하는 자연의 삼라만상은 이분법이 대단히 기본적 현상 파악 도구임을 가르쳐 줍니다. 아니, 이분법적 구조가 자연과 이상적으로 조화되는 것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 음과 양, 유와 무, 움직임과 멈춤, 밝음과 어둠, 과거와 미래, 양전하와 음전하, 융합과 분열등등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의미 있는 것들을 이분화 시키고 있는 것이 자연의 실체 입니다.


어떤 분은 말할 것입니다. 시간의 구분이 어찌 과거와 미래만 있는 것이냐. 그 사이에 현재도 있는 것 아니냐. 모든 언어의 시제(時制, Tense)가 그것을 증명해 주는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이 인식하고 구분하는 논리이지, 자연의 시간에는 현재만이 아니라, 심지어 과거나 미래의 구분도 없습니다. 물리량 또는 차원으로의 시간에서 현재는 마치 기하학의 점 개념과 마찬가지로 허구적 존재일 뿐입니다. 이해 하시기 힘들면 그냥 진도를 나가십시다.^^


제가 앞에서 이분법의 자연스러움은 믿지만 완전성을 주장하지는 않는다고 말한 이유는 철학적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시간의 경우, 우리는 이 물리적 차원을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한계에서 경우에 따라 편리하게 구분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언어적 소통의 편의를 위해,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기타 문법적 구분을 하고 있을 따름이지, 시간 자체에는 어디에도 그러한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현재라는 허구적 점을 기준으로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는 이분법도 시간과는 상관없는 인위적 구분일 따름입니다. 그러한 구분은 시간이 우리가 상정하는 과거에서 미래를 향한 일관된 방향성을 가지고 진행한다는 인간의 인식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만일, 시간의 방향이 그러한 선형적인 것이 아니고, 원을 그린다면 우리가 미래라고 생각하는 시점은 사실 과거이며, 우리가 지났다고 생각하는 과거는 앞으로 지나 갈 미래와 같은 것입니다.


시간에 대한 이러한 객관적 시각을 인정한다면, 우리가 말하는 과거, 현재, 미래는 인간 존재나 우리가 관찰하는 현상의 변화를 기준으로 시간이라는 별개의 차원에 눈금을 매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바다를 항해하는 배에서 칼을 떨어뜨린 다음, 배의 난간에 표시를 하여 칼을 찾겠다고 하는 것과 유사한 것입니다. 시간은 바다이고 칼을 떨어뜨린 우리의 현재는 배에 새겨진 금과 같은 것입니다.


시간의 직진성에 대한 회의는 아인슈타인 이후 파인만(Richard P. Feynman) 등에 의해 타당한 회의였음이 증명되었고, 시간의 방향성에 대한 회의는 스티븐 호킹 등에 의해 지금도 진행 중인 고민거리입니다. 우리는 시공간 개념의 4차원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우주의 모든 역학 관계를 통일적으로 설명해 주는 이론도 없이, 지구를 떠나 외계로 나갈 수 있고, 위성을 태양계 저 너머로 날려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연구하는 10차원이나, 초공간(Hyperspace), 초끈이론(Super string theory) 또는 홀로그램 우주론(Holographic Universe)이나 평행우주(Parallel Universe) 등에 대한 연구들을 무시하고 조롱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쨌든 인류 문명은 이런 물리학자들이나 인류를 위해 무언가를 만들어 보겠다는 도전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발전된 온 것이니까요.


아직 우리는 아는 것은 미미하며 모르는 것은 너무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분법의 합리성이나 자연스러움은 인정하지만, 완전성을 주장하지 않는 것일 뿐, 사실 이분법보다 더 명료하고 실효적인 그리고 어쩌면 자연의 섭리와 가장 조화되는 논리적 분류법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한 가지 더 부연하자면, 세상에는 흑과 백 두 가지 색 이외에는 없다는 이분법은 분명 오류입니다만, 그렇다면 세상에는 몇 가지 색이나 존재하는 것일까요..


아이들 크레용 박스에 들어 있는 크레용 개수만큼 일까요, 아니면 미대생들의 물감통에 들어 있는 물감 튜브 숫자만큼 일까요. 아니면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색깔로 충분한 것일까요. 색의 본질은 빛과 구분하여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빛이 없다면, 이 우주 어느 것도 어떤 색인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완벽한 암흑을 경험하신 일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암흑의 색갈이 검은 색이라고 확신하십니까? 그것은 색이 아닙니다. 색은 물체에서 반사된 빛이 우리 망막을 통해 뇌신경에 전달되어 그곳에 입력되어 있는 색체 정보로 판단되는 경험적 감각입니다.


색의 본질은 빛이 대상 물체에 부딪혀 그 물체를 구성하는 질량 요소, 즉 분자나 원자 등과 회절, 반사, 통과하는 과정에서 우리 눈이나 카메라의 필름에 반사된 빛의 입자나 파동의 주파수인 것입니다. 따라서 색이란 것은 빛의 속성과 대상의 속성이 작용한 결과 우리 감각기관에 전달된 신호의 종류 수만큼 많은 것입니다. 즉, 빛의 입자적 성격과 파동적 성격이 이루어 내는 스펙트럼의 어느 부분을 읽었는가의 문제이지, 단계별로 구분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닌 것입니다. 이분법의 대상이 아닌 것이지요.


수구와 진보개혁의 이분법


수구와 진보는 이분법적 구분이 가능한 개념일까요, 아니면 사회의 구성원이 각기 처해진 상황에서 빚어 내는 스펙트럼의 두 개 단면(Segment)일까요. 저는 이분법적 분류의 대상인 동시에 스펙트럼의 단면들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선 우리는 우리 사회 수구세력이나 개혁세력이 하나의 현상에 대해 보이는 다양한 반응을 통해, 그들 사이의 색채적 대역(帶域, Band width), 즉 스펙트럼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대표적 표본 군집을 살펴보면 또한 뚜렷한 본질적 성향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즉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이분법적 구분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제 논의는 이분법적 구분이 가능한 대표적 특질 하나를 설명하는 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우리 사회는 명계남씨를 좋아하는 그룹과 혐오하는 그룹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이 말은 농담인가요^^)


세상은 발명가 그룹과 파워브로커 그룹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 글 제목 밑에 인용된 나탄 로스차일드(Nathan Mayer de Rothschild) 남작의 말이 의미하는 요체입니다. 우선 나탄 로스차일드가 누구인지 잠깐 설명 드립니다. 나탄은 그 아버지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Mayer Amschel Rothschild)의 다섯 아들 가운데 셋째 아들입니다. 이들의 원래 성(姓)은 로스차일드가 아니라 바우어(Bauer) 입니다. 나탄의 할아버지 이름이 암셸 모세스 바우어(Amschel Moses Bauer) 였으니까요.


대대로 골동품상 겸 고물상을 한 이 집안은 가게 간판으로 붉은 바탕에 사자와 유니콘이 그려진 방패를 사용했고, 이름도 붉은 방패(Rot-Schild)였습니다. 이 가게 이름이 마이어 암셸에 의해 가문의 성(姓), 로스차일드가 된 것입니다. 어쨌든, 마이어 암셸은 전 세계 최대의 부를 축적한 가문의 왕조를 연 사람이며, 나탄과 그 다섯 형제들은 당시 유럽의 열강 한 나라씩을 맡아 세계 경제를 장악합니다.


일루미나티의 최초 기획자인 아담 와이샤우트(Adam Weischaupt)를 지원한 후원자가 바로 나탄과 그 아버지이며, 미국 경제의 현재 틀을 만든 자들도 이들이 파견한 에이전트(대리인)들 이었습니다. 이 가문의 역사와 일루미나티의 역사는 18세기 중후반에 시작되어 현재까지 강고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신뢰의 사회, 불신의 사회” 를 통해, 지루하게 다시 듣게 되실 것입니다. 궁금해 참을 수 없는 분은 미리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다만 너무 깊게 빠지시면 정신과 생업에 막대한 지장이 있을 수 있음을 엄중하게 경고합니다. ^^


막강한 나탄 로스차일드 남작이 왜 자신을 망칠 수 있는 여색과 도박 다음에 발명가를 말한 것이며, 별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지만, 자신을 가장 확실하게 파멸시킬 수 있는 잠재적 천적(天敵)으로 지목했을까요. 단순한 영향력 정도가 아니라, 전대미문의 경제력을 쥐고 유럽의 왕실들을 굽신거리게 만들 힘을 가지고 있었던 자가, 발명가를 두려워 하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요.


예, 그렇습니다. 자신은 본질적으로 파워브로커이며, 파워브로커에게 쥐약은 발명가였던 것입니다. 발명가(Inventor)하면 토마스 에디슨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않습니까. 토마스 에디슨의 무수한 천재적 발명에도 불구하고, 그 자손이 지금 거대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전화를 발명한 벨이나 다이나마이트 생산기법을 개량한 노벨 등은 돈 좀 벌었고, 이름이 들어 있는 거대 기업도 있지만, 대부분의 발명가, 또는 넓은 의미의 혁신자(Innovator)들은 역사에 이름은 남겼어도 큰 재산을 남기지는 못하는 일이 더 많습니다.


나탄 로스차일드는 인벤터라고 말했지만, 그가 경계한 천적은 넓은 의미의 혁신자, 즉 이노베이터 였습니다. 한 사람의 이노베이터 머리 속에는 이 세상을 극적으로 변화 시킬 수 있는 어떤 사상, 아이디어, 프로세스 등이 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현실화되면, 그 이전의 모든 부와 힘은 보잘 것 없는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록펠러, 카네기, 모간, 로스차일드 등의 소위 세계적 재벌들의 음모는 모두 이러한 이노베이터들의 잠재적 또는 현실화 되기 시작한 파괴력을 차단하기 위한 공작이었습니다.


이노베이터들과 파워브로커들의 대립은 인류 역사에 나타난 인간 부류간의 갈등과 대립 가운데 가장 극명하고 거대한 싸움입니다. 이노베이터들은 대개 개인적 덕성이 풍부하고 인간성의 고양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일상은 그것이 무엇이든, 세상을 이롭게 하고 인간을 더 높은 수준으로 고양시킬 수 있는 일이나 디자인, 프로세스, 또는 제도나 법 등에 묶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설계와 노력이 실현되는 현장에는 거의 반드시 참여하게 마련입니다.


이에 반해, 중개인이라고 할 수 있는 파워브로커는 대략 악의나 적의가 넘치는 음흉한 인간들입니다. 그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라곤 전화질이며 참석하는 것은 미팅뿐입니다. 이들은 번영의 수단을 창조하는 일이 없이 번영을 추구하고, 때로 자신만의 상대적 이득을 꾀하느라 전체적 진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며 그로 인해 타인이 상처 입는 것을 개의치 않습니다.


위대한 이노베이터는 본질적으로 많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종종 고독하게, 혼자서 인류가 수 백년간 걸어 갈 길을 앞서 걸어 나갑니다. 그러나 파워브로커는 그들의 현재 상황 또는 고작 몇 년 앞의 미래를 위해 몰입할 따름입니다. 인류의 생존 양식 저변을 편견 없이 살펴보면, 우리가 살아 가는 가장 중요한 요체들은 이노베이터들의 고독한 싸움과 노력의 결정체들인 것입니다. 이노베이터는 기본적으로 “위대한 시혜자”들이며 “생명의 원천”을 발견 하는 사람들입니다.


파워브로커는 그들의 헤게모니를 위협하는 이노베이터가 언제 어떤 형태로 출현할 지 모릅니다. 그들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늦은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그러한 이노베이터의 출현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인간 사회 전체를 억압하고 말살하는 행동도 서슴지 않습니다. 예수의 탄생을 알고 모든 신생아들을 죽였던 헤롯 같은 자가 그들입니다.


지금 이 세계를 장악하는 권력을 쥔 자들이 ‘새로운 세계 질서’ 또는 ‘세계 정부’ 라는 것을 통한 전제정치를 꿈꾸는 이유 역시, 자신들의 현 위치를 잠식하거나 위협할 수 있는 어떠한 프로세스나 이노베이터도 나타날 수 없게 싹을 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To be continued


(時說)


우리 나라의 경우, 해방 후 계속된 친일 반민족 군부 쿠데타 독재 세력과, 그러한 자들을 앞세워 실질적 권력을 누려 왔던 정치-경제-언론의 삼합회 같은 파워브로커들이 광범위하고 강고한 네트워크를 형성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두 번이나 정치적 파워를 재생산하는데 실패했습니다. 1997년, 이회창이란 마담을 앞세워 기득권 수호를 위해 싸우다 패했지만, 그들은 이미 어느 정도 기득권화 되어 있던민주당 정권을 불만스러운 대로 참아주며, 5년 후를 위해 시끄럽게(^^) 와신상담 했습니다.


그런데, 재벌들의 엄청난 자금 지원과 조중동을 위시한 전 언론의 일방적 응원, 그리고 정몽준의 엿 같은 짓에도 불구하고, 이회창은 재수에 실패했습니다. 개인적 이력의 치명상을 떠나, 수구 기득권의 낙담과 좌절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을 것 입니다.


그것도, 그들의 60년 기득권 아성을 친일, 반민족, 쿠데타 독재, 정-경-언 유착의 산물로 바라보는 지지자들이나, 원칙과 상식, 화합과 통일을 지향하며, 정치, 사회, 경제 제 분야의 이노베이션을 꿈꾸는 일개 농부의 아들에게 패한 것입니다. 그들의 기득권이 위협 받고, 역사의 패자로 퇴장 해야 할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한 돌출적 이노베이터 때문에, 재벌과 언론, 그리고 총구의 힘을 바탕으로 한 파워브로커 산업 전체가 구조 조정 되는 상황이 왔던 것입니다. 그들은 속으로 이 이노베이터 못지않게 이회창이가 미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이노베이터의 진가를 발견하고 중용한 국민들이 돌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어제 시청에 모였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들에게 속아서 동원된 사람들이지만, 그들을 동원한 주체들은 이 이노베이터를 지금이라도 없애 버리지 않으면, 자신들의 존재 기반이 흔들리게 되는 파워브로커들입니다. 극우익 단체나 변질된 시민단체들의 핵심적 지도층들은 하나같이 이념이나 가치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영향력을 잠식하며 이익의 원천을 차단하고 힘의 소매상 노릇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이노베이션(개혁) 자체를 혐오하고 분노하여 들고 나온 것입니다.


수구원로들이 앞장 서 몰려 나왔었고, 개신교 신도들이 동원되었으니, 다음은 이제 서경석 등의 변질된 사회운동가들이 또 무엇인가 휘몰고 나올 것입니다. 이들 앞이나 뒤에는 언제나 조중동과 한나라당, 그리고 몇몇 간이 밖에 나와 있는 재벌들이 있는 것입니다. 공공연하게 군부 쿠데타를 충동질하는 조갑제 같은 자는 더욱 죽기 살기로 매달릴 것이며, 신혜식 따위에게 무슨 감사장 같은 것을 주었다는 미국의 월포위츠 같은 자들은 언제 한국 카드를 써먹을 것인지 예의 주시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노베이터는 외롭습니다. 그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자는 많지 않으며, 한결같지도 않습니다. 국제 정세는 국제 정세대로 얽혀있고, 국내 정세는 감내할 수 있는 무질서의 궤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새로운 질서로 가기 위한 과도적 무질서(transient chaos)를 반드시 나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또한 새로운 질서 역시 지나치게 안정되어 있는 것은 사회적 침체와 유사한 것입니다.


그런 과도하고 부자연스러운 안정이 바로 파워브로커들이 바라는 바입니다. 그들이 염원하는 예측 가능성이란 파워브로커 업무의 불확실성과 위험 부담을 줄이고자 하는 뜻이 내포된 것입니다. 투기 자본을 더 유치하기 위해, 박정희식 안정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웃기는 개소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사회의 활력은 다소의 카오스 현상을 반드시 동반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노하우21 게시판의 상황도 이러한 관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무질서는 사회적 약동과 활력 때문이 아니라, 사회 내부를 의도적 대결 국면으로 몰아가는 조장된 무질서이기 때문에 문제인 것입니다. 수구들은 그렇게 몰아가는 것이 개혁진영이라고 말하지만, 탄핵이 없었다면 촛불시위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박근혜가 탄핵 당한 것도 아니고, 미국에 선전 포고를 한 것도 아니고, 북한에 합병 제의를 한 것도 아니고, 종교의 자유를 박탈한 것도 아닌데, 그들은 왜 모여서 인공기를 태우고, 성조기를 휘둘렀답니까.


수구들과 개혁 진영의 싸움은 근본적으로 권력의 싸움일 뿐 아니라, 내용적으로 사회적 이노베이션을 원하는 자들과 그들을 압살하고자 하는 파워브로커들의 싸움이며, 공화정과 전제정의 싸움이며, 인간성과 비인간성의 싸움인 것입니다.


아픕니다. 그러나 가슴 아파 한다고 이 국면이 갑자기 전환될 것 같지도 않습니다. 미국의 남북 전쟁도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지금 상황과 닮은 점이 전혀 없지 않습니다. 아미스타드라는 영화에서 퀸시 아담스 전직 대통령 역을 맡은 안소니 홉킨스가 감동적으로 표현했듯, 인간성과 헌법정신을 수호하기 위해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작은 힘이지만, 힘을 모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그들은 대한민국을 구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자신감을 구해야 합니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민족혼을 사수해야 합니다. 그들은 민중의 경제적 어려움을 말합니다. 우리는 민중의 압살을 막아내야 합니다. 그들도 민주주의를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공화정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인간적 존엄과 자유는 우리 자신이 지키지 않으면 누구도 지켜 줄 사람이 없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이웃에게 동료에게 친구에게 전하십시오. 그들의 참여가 없으면 이 나라와 민족 그리고 국가가 어떤 자들의 지배 아래 들어 가는지. 우리 자식들과 그들의 자식이 어떤 사회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말입니다. 물론 그들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지만, 여러분의 이웃, 동료, 친구가 누구를 더 신뢰하는지는 여러분 하기 나름일 것입니다.

[노하우21 http://www.KnowHow21.co.kr]

남재 (2004/11/17 00:42:50)

잘 봤습니다. ^^

   

notice   85~91학번 소모임입니다.  관리자 04/01/03 1680 
21   85~95학번 모임 공지(장소변경) [35]  이재훈 07/04/24 4675 
20   85~95 졸업생 모임 공지  이재훈 07/04/20 1559 
19   미경누나 환송회(수정) [8]  손병희 05/11/25 2331 
18   이미선, 박영 모친상에 조문해주신 여러 선후배님들 감사합니다  박영 05/06/28 1682 
17   까만소와 저녁을,,,, [6]  손병희 05/06/24 2176 
16   84~91 송년모임을 끝내고 [35]  안규남 04/12/14 4642 
15   2005년 84~91학번 회장은? [31]  이재훈 04/12/12 3088 
14   12.10일 84~91학번 송년모임 관련 [6]  안규남 04/12/03 1783 
13   84~86학번 근황 및 연락처  안규남 04/11/18 2831 
12     [re] 84~86학번 근황 및 연락처  이종면 04/11/19 1955 
11   글터 문화제와 송년 모임 [19]  안규남 04/11/16 2239 
  차분히 읽어볼만한 듯..... [1]  백사 04/10/07 1922 
9   반가웠고, 후배들 수고했습니다. [2]  백사 04/06/15 1663 
8   넷맹회원님들께 [1]  배응석 04/06/03 1749 
7   6.12 양평MT를 가족모임 회식으로 변경합니다. [1]  이재훈 04/05/24 1612 
6   강력하게 추진하라!! [1]  배응석 04/05/03 1752 
5   잘있었니??? [9]  박인선 04/04/17 1748 
4   민호가 여기 자주 들어오나? [37]  백사 04/03/25 4292 
3   가끔 얼굴들 보고 싶다. [9]  김태일 04/02/12 1920 
1 [2]

Copyright 1999-2017 Zeroboard / skin by LN
글터 네트워크
글터 스케쥴
- 2017년 5월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회비 입금 안내
산업은행
020-8750-0978-745
(정지문)
ⓒ 2003~2007 열린글 삶의문학, 성균관대학교 문학동아리 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