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그제 그렇게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걸었다. 동네 근처 공원을 한바퀴 돌다 작은 연못가에 문득 멈춰선 발걸음. 비는 폭포수처럼 쏟아 붓는다. 이제 막 연꽃을 피우려는 수련들이 접시만한, 아니 쟁반만한 잎들을 청청하게 빛내며 빗 속에 서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연잎이 좌우로 몸을 흔들며 춤을 춘다. 뭘까? 지나가는 맹꽁이나 개구리, 그도 아님 이 빗속에서 먹이를 찾아 나온 백로일가? 도대체 무엇이 저 연잎을 좌우로 흔들흔들 춤추게 하는건지 몰라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퍼붓는 빗줄기를 온몸으로 받고 있던 연잎이 그 빗방울들을 모아서 한쪽으로 주르룩 흘려 보낸다. 흔히 말하는 표면장력에 의해 물방울이 또르르 연잎을 굴러 흘러내린다. 억누르는 빗줄기와 쉼없이 빗방울을 쏟아내는 하늘에게 연잎은 연약한 줄기로 흔들 흔들 춤을 추며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참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 그 광경을 한참이나 들여다본다. 그러다 문득 수은등이 비추는 연못의 수면을 보고 갑자기 콧등이 시큰해졌다. 거기엔 이 빗줄기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연잎들이 줄기가 꺾인 채 물에 떠다니는 모습이 있었다. 곧 있으면 연꽃을 피워 내 눈과 코와 마음까지도 밝게 빛내 줄 어린 연잎들이 줄지어 물속에 수장되어있었다.
우리네 삶이라는 것도 연잎처럼 큰 꿈을 지니고 연꽃으로 피어나길 기다리는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심한 빗줄기, 쏟아지는 그 빗줄기속으로 빗줄기속으로 , 삶의 희망이나 꿈이 연약한 육신의 가는 줄기로 겨우 겨우 버티며 그 꿈을 향해 나아갈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생활이라는 현실이라는 이름의 그 암흑의 하늘과 퍼붓는 빗줄기에 목아지가 꺾인 연잎처럼 끝도 없는 진흙탕 속으로 가라앉고 가라앉고 하는 경험들이 있었을 것 같다. 이런 생각에 빗줄기속에서 망연히 서서 연잎들을 바라보다 문득 깨달았다. 그럼 이제 영영 연꽃은 피지 않는 건가? 아니다. 이 모진 빗줄기 미친 비바람 속에서도 내일이면, 아니 모레라도 맑은 햇님이 얼굴을 보이면 아마 그 넓고 청청한 연잎 사이로 수줍게 향기롭고 깨끗하고 하이얀 연꽃이 피어날 것이다. 내가 혹은 우리가 삶의 희망을 잃었다고 느낄 때 이 생각을 떠올려 보면 좋을 것 같다.
또 가끔은 이 콧잔등 시큰한 생각을 마음의 창고 한 구석에 갈무리해두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짧은 낮잠에서 깨어나 밖을 보았을 때, 8월의 빛나는 태양이 푸른 하늘위를 불타며 달릴 때, 집안이 너무 어두운 동굴처럼, 낡아빠진 누더기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집을 박차고 밖으로 나간다. 마치 돌아오지 않을 항구를 떠나는 배처럼. 삶에도 이런 시기가 있다. 모든 것이 생명과 기쁨으로 넘치는 시기가 있어 우리는 모든 것이 다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될거라 믿으며 삶을 그야말로 즐길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날의 끝에 갑자기 몰아닥칠 미친 돌개바람이나 천둥, 번개와 날뛰는 비바람, 끝없이 퍼붓는 빗줄기의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 마음의 창고 한 구석 갈무리해둔 연잎과 연꽃을 떠올리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심호흡하고 다시 물 위로 물 위로, 그 소담한 연꽃을 피울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다 쓰고 나서 밥 말리의 "Lively Up Youself"를 듣는다. 활기차게 또 하루를 살아 봐야지.
어느덧 일기장이 되어가는 홈피구나. ㅋㅋㅋ 어쩔 수 없지. 그게 싫으면 다들 글 열심히 써서 올리시길.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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