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룻배를 타고 지나가며 바라보았을 때
난지도는 맑은 샛강을 푸른 띠처럼 두른 채
난꽃과 갈대밭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촌티가 나기는 했지만 예쁘게 가꾼 모습이
시골여인 같은 모습이었다."
<한강속의 섬 '난지도'>
서울 마포구 상암동 482번지 일대의 난지도. 난지(蘭芝)는 난초와 영지를 아우르는 말이다. 두가지 모두 향초여서 흔히 지극히 아름다운 것을 비유할 때 쓰인다. 1970년대 초만해도 갈대가 무성하고 청춘남녀들의 데이트 코스로 사랑받던 섬. 이처럼 아름답고 향기롭던 곳이 일천만 서울 시민들의 '삶의 찌꺼기들의 집합체'로 전락한 산업화의 아이러니는 문화와 예술의 세계에서 다루기에 충분한 소재였다.
20세기 초 T.S 엘리엇은 <황무지> 3부인 '불의 설교'편에서 심란한 눈빛으로 강물을 바라보며 '기름과 타르'의 땀을 흘리고 있다고 묘사했다. 한국 시단에서도 환경오염 문제를 엘리엇 풍으로 노래한 시들을 90년대부터 만날 수 있다. 생태시들이 태어날 수 있었던 배경은 난지도의 환경오염 때문이었다.
신현봉의 연작시집 <난지도>(1994)는 난지도를 부정적인 장소나 단순 사고로 접근하지 않고 인간을 위한 '내면의 거울'로 환기시킨다. 신 씨는 서울 시민들이 쌓아올린 쓰레기들의 공동묘지이며 또 고향인 난지도를 '시대의 검은 물신(物神)'으로 제시한다. 다시말해 난지도는 정신보다는 물질에 물든, 이기심에 가득한 탐욕적인 얼굴의 동시대인을 은유하고 상징하는 곳이라는 게 시인의 메시지다.
정태준의 시집 <난지도 가는 길>(1998)은 난지도를 서정적으로 노래한다. 하지만 "난지도에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시구처럼 '불모의 땅'에 대한 슬픔이 서글피 배어 나온다.
1984년 소설 <난지도>를 발표해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끌었던 작가 정연희는 소설 속에서 50년대의 난지도를 이렇게 표현했다.
"나룻배를 타고 지나가며 바라보았을 때 난지도는 맑은 샛강을 푸른 띠처럼 두른 채 난꽃과 갈대밭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촌티가 나기는 했지만 예쁘게 가꾼 모습이 시골여인 같은 모습이었다."
<쓰레기 매립 모습,1980>
그러나 78년부터 쓰레기 하치장으로 변하면서 이 소설을 쓰던 무렵의 난지도는 파리, 먼지, 악취의 삼악도(三惡島)가 되어버렸다. 서울 곳곳에서 매일 트럭 3,000대분의 쓰레기가 버려져 거대한 산을 이루었다. 정 씨의 소설 속 인물들은 쓰레기를 파헤쳐 생존하는 난지도 사람들이다. 그들의 적나라한 빈곤이 생생하게 묘사되는 난지도는 물질의 풍요속에서도 해골의 두 눈처럼 깊어져가는 정신의 빈곤과 빈부의 격차를 대리 상징했다. 소설 <난지도>는 이를테면 '난초의 섬'이 쓰레기 더미로 탈바꿈한 이행의 역사를 간증한 작품이다. 현대인의 정신상황이 난지도의 쓰레기와 닮아 있다는 절망감을 작가는 이렇게 표현했다.
<난지도 쓰레기산,현재>
"쓰레기산 위로 쏟아져 내리는 불볕은 저주였다. 그것은 앙심이 되었다. 쓰레기더미는 죽음의 산이다. 인간의 삶에서 부스러기가 되어 나온 주검들의 산이다. 그 산에는 살아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맹렬하게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썩어가는 일과 썩어가는 냄새 뿐이다. 그것만이 죽음도 정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문학 뿐만 아니라 여타의 장르에서도 난지도는 작품의 소재와 배경이 된다. 97년 백범영 씨의 대형 수묵화 <20세기 유적-난지도 패총>은 '산업화의 상처'라는 맥락에서 난지도 풍경을 보여 주었다. 국제무대에서 활약해 온 설치작가 전수천 씨는 그의 초대전(97년)에서 난지도 쓰레기를 예술로 승화해 보여주었다. 폐기물로 뒤덮인 곳에서도 잡초들이 생명력으로 자라나는 모습을 보고 감동한 전 씨는 난지도에서 수거해 온 쓰레기들과 산업폐기물을 압착해 작품으로 형상화했다.
또 이 환 등 설치작가들은 난지도 폐품을 모아 환경을 주제로 한 리사이클링(recycling 재생) 미술작업을 했다.
극단 춘추는 98년 공연한 연극 <난지도>를 통해 난지도 정착민들의 꿈과 한을 묘사하기도 했다. 김영동은 국악음반 <이런 나라에서 살고 싶어요>(1998)에 실린 <난지도의 꽃>에서 과연 우리가 후손에게 무엇을 남겨야 하고 무엇을 보여 줄 수 있는지를 서정적인 가사에 담았다.
'쓰레기 산' 난지도는 문화속에서 '야누스의 얼굴'로 나타난다. 쓰레기 하치장으로 변하기 시작한 78년을 기점으로 아름다웠던 '과거의 난지(蘭芝)'와 쓰레기로 가득 찬 '현재의 난지(亂地)'가 오버랩된다. 작가들이 과거의 아름다운 얼굴에 집착하는 까닭은 과거의 난지도 이미지가 현재의 이미지를 극복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노만수 기자(경향신문 뉴스메이커)
이재훈 (2004/08/17 22:14:02)
만수형 글 잘썼네, "난지도 가는 길"이라는 시집도 좋은 시가 많을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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