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2-01 16:49:37)

합평회

04년 1월 글터문학상 수상작 (스무살 우리는 아침이다)

▣ 예정보다 하루 늦게 발표하네요.
04년 1월 글터문학상 수상작은 03학번 미립군의 작품
'스무살, 우리는 아침이다'입니다.
심사는 95학번 (대표 : 95 김덕중 선배)에서 해주셨습니다.
미립군의 시 '스무살, 우리는 아침이다'는
숨쉬는 것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스무살을
풋풋하지만 열정적인 언어로 표현한 시였습니다.
표적의 중앙을 맞추는 예리함이 부족해서
주위에 새까맣게 난도질한 것 같은 어수선함이 거슬리기는 하지만
읽는 이로 하여금 스무살의 설레임에 공명할 수 있게 하는
다감한 장면들의 배치가 인상적이라는 평을 얻었습니다.
미립 군에게는 졸업생 운영위에서 준비한 도서상품권을
상품으로 드리겠습니다.
앞으로 더욱 좋은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좋은 작품이 많았음에도 아깝게 상을 받지 못한 학우 여러분들에겐
다음 기회를 약속하며 모두들 건필하시길 바랍니다.

스무살, 우리는 아침이다
                                                                          03 미립

스무살, 우리는 아침이다
아직 몸의 곳곳에 습하게 젖은
꿈같은 지난 시간들의 몽롱한 끌어내림이 있다
도자기처럼 부드러운 곡선에 하얀 살결이 아름다웠던
친구네 하숙생 누나의 목욕하던 뒷모습과
창틀에 발끝을 걸고 고개를 빼꼼 내밀었던 아슬아슬한 엿보기
‘어리니까’ 라는 말로 용서받을 수 있었던
작은 악행들에서부터
백점짜리 시험지라든가
성탄절마다 찾아오는 산타 할아버지와 루돌프, 이런 것들
낯설었던 첫 키스의 두근거림과
교복을 입고 몰래 마시는 소주 한 잔
순수한 열정으로 함께 했던 삶과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들까지
이제는 부재함을 알게 된 어리석은 아름다움들
해마다 한 겹씩 미농지를 올려놓듯
차츰 흐려져 갈 나의 일기

추억은, 성급히 벗으려다 발끝에 걸린 면바지같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스무살, 우리는 아침이다
세상을 먹어치우기에는
아직 속이 쓰리고 거북하다
공복을 채우는 건 온갖 상념들
스무 해 동안 우리가 바라보았던 하나의 빛에 대해 생각한다
어쩌면 그것은 도심의 가로등처럼 흔한 것
우리는 그 곳에 다닥다닥 붙은 한 무리의 등아(燈蛾)와도 같은 것
이런 쓰레기같은 잡념 속에
세균처럼 나의 이상을 갉아먹는 현실에 대해 고민하다가
이것이 젊음의 낭만이라며 캠퍼스 벤치에 앉아
병나발을 불면서 '답답하다' 중얼대는 것
그러다 지나가는 병든 노인을 보며
우리의 고민과 방황은 풍요로운 세대의 사치가 아닌가
'진정으로 괴로운 자에게는 비명도 신음도 겨를이 없다'
어느 글귀 하나 읊으며
소주의 끝맛, 시덥잖은 고뇌에 빠진다
무기력한 하루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라는 하루살이
축축한 하루가 끝날 때 즈음이면 항상 느끼는 한 가지
아아 오늘도 나는

생각의 잽, 고민의 라이트 훅, 후회의 어퍼컷
을 맞고 비틀거리다 K.O.

스무살, 우리는 아침이다
갓 태어난 햇살이 눈이 부시다
눈부심 속에 이제야 몇 가지 문득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아침이라는 하루의 준비기간은
지나고나면 너무도 짧게 느껴진다는 것 그래서
아쉽고 안타깝고 뒤늦게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것
아침을 얻는 자가 하루를 정복한다
매일 잠자리에 들 때마다 이 말을 되내이며 내일은
아침을 얻겠다고 다짐한다는 것 그러나

스무살 이라는
아침 은 결코

다시 오지 않는다 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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