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깊은 3차 술자리, 휴대전화가 떤다 "아빠, 큰일났어
요 엄마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요 아빠도 없는데" 술
이 확 달아난다 술집 벽에 붙은 야한 달력 속 오토바이에
시동이 걸린다 "노크하지 말고 조용히 현관에 가봐 아니
다 노크해봐 아빠처럼 꼭 헛기침하고" 술집 주방에서 들
려오는 파전 뒤집는 소리마저 불안하다 그때 다시 부르르,
문자가 뜬다 -- 아빠, 들어올 때 감기약 --
"잠깐만 실례!" 거수경례에 콧노래까지 흥얼대며 술집
을 나선다 눈보라 치는 새벽 한시, 어딜 가서 감기약을 사
나? 24시 편의점에 들러 겨우 쌍화탕을 산다 취한 눈에 자
꾸 쌍화점이 깜박거린다 비틀비틀 2차에 들렀던 단골 술
집 문을 밀친다 "아줌마 금세 보고 싶어 왔어요 먹다 남은
감기약 있으면 꿔줘요 아내가 지금 야한 드라마 더빙하고
있다네"
약봉투에 낯설고도 아득한 아내 이름을 쓰고는, 쌍화탕
두 병을 포갠다 어떻게 따스하게 배달하나? 세상도 메뉴도
나 없이는 절대 안되지, 3차 술자리로 돌아와서는 통닭 한
마리 급배달시킨다 -- 나 대신 애쓴 닭 날개에 뽀뽀 한번
해주게 -- 고개 처박고 문자를 찍는다 "아내의 신음소리
여! 사라져라" 우쭐대며 건배사를 외치자, 게슴츠레하던
동태눈들에 일제히 쌍심지가 켜진다
- 감상 -
이정록 시인은 시는
『쓰는게 아니라
받아 모시는 거다.
시는, 온몸으로 줍는 거다.
그 마음 하나로
감나무 밑을 서성거렸다.
손가락질은 하지 않았다.
바닥을 친 땡감의 상처, 그 진물에 펜을 찍었다.
홍시 너머 푸른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사랑의 주소는 자주 바뀌었으나,
사랑의 본적은 늘 같은 자리였다.』
정말 이 시인의 시의 정의에 고개가 끄떡여 지고
멋있는 것 같습니다. 마음속에 오래 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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