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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8 10:58:45)
이재훈
효창공원을 통곡함
효창공원을 통곡함


                                 심산 김창숙                            


효창공원에
스산한 바람 불고
처절한 비 내리는데
통곡하며 부르노라
일곱 선열의 영혼을
땅속에 묻힌 말라버린 뼈
일찍이 무슨 죄를 졌기에
멋대로 공병대의
괭이 아래 파헤치는가.

저 남한산(南漢山 남산)
저 탑골공원을 보라
하늘을 찌르는 동상이
사람의 넋을 빼앗는구나.
독재의 공과 덕이
지금은 이렇듯 높을지나
두고 보시오
상전(桑田)과 벽해(碧海)
일순간에 뒤집힐 것을.



-自註(心山 註) : 丙申(1956)년 5월. 듣자니 이승만 대통령이 공병대에 명하여 효창공원에 있는 백범 김구 · 석오 이동녕 · 청사 조성환 · 동암 차리석 · 윤봉길 · 이봉창 · 백정기 등 일곱 열사의 묘를 파내고 운동경기장을 개설한다고 한다. 이 시를 도하 각 신문에 게재하여 온국민들에게 알렸다.
-남산과 팁골공원을 지적한 이유는 그 두곳에 이승만의 동상이 있었기 때문
(※ 4 19 혁명 때 철거되었던 남산 이승만 동상은
     2011년도에 뉴라이트에 의해서 다시 세워졌다고 합니다.)



-출처 : http://pann.nate.com/talk/311018973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서 대한민국의 공식 중요 제1묘역이라 함은 어디일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충원이 아닐까~! 하며 많이 답을 하곤합니다...그러나..우리역사의 근현대사에 대해
좀더 공부한사람들은 분명히 효창원이라 말 할것입니다...과연 그렇게 효창원이라 말할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효창원을 애기하면, 효창공원으로 알고있는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그이유는 우리정부가
효창원을 광복이후  이승만 정권부터 해서 지금까지 효창공원으로 늘상 애기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효창원을 효창공원으로 부르게 된 이유가...효창원의 의미을 깎아내리기위해  사용된 명칭이라는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효창원이라 불러야 할이유와
이시대 우리대한민국의 역사에서 큰자리을 차지하는 효창원에대한 유래와 그역사적 의미와 수난사을 알려드리고자합니다.

그리고 효창원에 안장된 애국선열들의 묘역과 그와 관련된 여러가지역사적인 내용 함께 그에 대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먼저 현재 국가에서 부여하는 공식명칭은 효창공원입니다...그러나..현재 그지명을 역사적의미와 기록등을 따지고 본다면  이곳은 분명히,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로부터 "효창원"이라고 불러야 할 장소이며,또한
공식명칭도 효창공원에서 효창원으로 바뀌어야 하며,
국민들도 함께 그렇게 효창원으로 불러주셨으면 합니다.

먼저 글을 올릴주제들입니다.
1)- 효창원의 유래와 그역사적 의미 그리고 수난사
2)- 민족의 성지-효창원의 통곡의 수난사 - 자세한 내용
3)- 효창원속의 임정주요인물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
4)- 삼의사의 묘 와 안중근의사의 실묘

1) 효창원의 유래와 그역사적 의미 그리고 수난사


◈효창원(孝昌園)
∘ 사적 제330호 (1989.6.8)
∘ 서울 용산구 효창동 255번지 일대 [171,294㎡(51,816평]
  
  
 
  
◈ 유래
본래 조선조 제22대 왕 정조(正祖)의 장자로 5세에 작고한 문효세자(文孝世子)(1782∼1786)의 묘소 즉 효창원(孝昌園) 자리인데, 그후 이 경내에 문효세자의 생모인 의빈성씨(宜嬪成氏), 순조(純祖)의 후궁인 숙의박씨(淑儀朴氏) 및 숙의박씨(淑儀朴氏)의 소생 영온옹주(永溫翁主)를 안장한 곳이였습니다.

- 주요기록

□ 문효세자의 묘호를 문희(文禧)로, 묘를 효창묘로 정하였다고 기록한 조선왕조실록 정조 10년(1786) 7월15일자 기록.
“문효 세자 묘호(廟號)와 묘호(墓號)를 의논하여 정하였다. … (중략)… 드디어 묘(廟)를 문희(文禧)로, 묘(墓)를 효창(孝昌)이라고 하였다.”

 
□ 문효세자를 효창묘에 장사지냈다고 기록한 조선왕조실록 정조 10년(1786) 9월 11일자 기록
“문효 세자(文孝世子)를 효창묘(孝昌墓)에다 장사지냈다. 이날 새벽에 발인을 하였는데, 임금이 홍화문(弘化門) 밖에 나와서 곡하고 전별하였다. 다시 홍화문 안의 악차(幄次)로 돌아와서 영여가 도성 밖에서 떠나기를 기다렸다. 임금이 흑립(黑笠)과 백포 철리(白布帖裏)를 다시 입고 묘소에 나가 최복(衰服)으로 바꾸어 입고서 일을 지켜보았다. 장사가 끝나자, 임금이 친히 신주(神主)를 쓰고 초우제(初虞祭)를 지내고 그대로 하룻밤을 지냈다.”


□ 효창묘를 효창원으로 승격한다고 기록한 조선왕조실록 고종 7년 (1871) 1월 30일자 기록.
“세자·세손의 묘호(墓號)는 원(園)으로 승격하고, 수위관은 수봉관으로 개칭하고 궁원 제관은 저경(儲慶) ·순강례(順康例)에 의하여 준비하는 것을 정식으로 하고 궁빈(宮嬪)을 칭원하는 것은 예(禮)에 없는 것이므로 다시는 어긋남이 없도록 하게 하다. 이어 효창원 외의 원으로 승격한 각 묘를 개호케 하다.”


효창원은 지금의 효창동과 청파동 일대에 걸쳐 소나무·밤나무 등 수림이 울창하여 매우 유수한 곳이었는데,
1894년 5월 청일전쟁 발발 직전 우리나라에 불법으로 침공한 일본군의 주력부대인 대도(大島) 혼성여단이 지금 효창운동장 남단의 솔밭에 주둔함으로부터 그 좋은 경관이 허물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어 일제가 1924년 6월 효창동의 일부를 떼어서 효창공원을 개설하고, 패망 직전인 1945년 3월에는 문효세자 이하의 상기 묘소를 모두 경기도 고양군 원당읍 원당리 서삼능 경내로 천장함으로써 효창원은 사실상 종말을 고하는듯했으나.

1945년 조국광복후  김구(金九) 선생은 그 주도하에 수많은 대중들의 지지로 옛 효창원의자리에..우리민족의 조선이라는 나라의 역사적 전통성을 이어 받으며
조국광복을 위해 목숨을 받친 애국선열들을  효창원자리에 안장함으로서 국가적 신성한 묘역으로서 효창원의 그의미을 되살렸습니다.

조국광복과 더불어 환국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김구(金九) 선생은 그 주도하에 조국광복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신
이봉창(李奉昌)(1901∼1932),
윤봉길(尹奉吉)(1908∼1932),
백정기(白貞基)(1896∼1934) 의사의 유해를 고국 땅으로 모시어,
1946년 7월 효창원의 중심지인 옛 문효세자 묘터에 국민장으로 안장함과 아울러,
안중근(安重根) (1879∼1910)의사 묘가 있습니다. 안중근의사님 묘는
예전 2010년 3월까지는 허묘(虛墓;假墓)로 모셔져왔으나 2010년이 안중근의사님 서거100년이 되는 해이므로
각민족단체들과 함께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가 안중근의사님의 영을 불러오는 영신제을 하였기 때문에  
실묘(實墓)로 의미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어 1948년 9월에는 중국 땅에서 순국하신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 및 주석 이동녕(李東寧)(1869∼1940) 선생과
국무원 비서장 차리석(車利錫) (1881∼1945) 선생의 유해와
군무부장을 역임하고 환국후 서거하신 조성환(曺成煥) (1875∼1948) 선생을
동남쪽 언덕에 안장하였다.

1949년 6월에는 임시정부 주석 백범(白凡) 김구(金九) (1876∼1949) 선생이 민족통일의 한을 품고 흉탄에 쓰러지자 국민장으로 서북쪽 언덕에 모시어 일대가 선열묘역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오늘날의 효창원이란 명칭이 새로 살아났으며 그 기본틀이 "항일독립  애국선열의 묘역"으로서 새로 짜여져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  효창원의 역사적 의미

조선시대말기의 효창원은 신성한 조선의 정식 왕가의묘역이었으나 일제에 의해 공원화 되고, 천장(이장)되었지만, 다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김구주석하에 옛 효창원자리에 우리민족의 역사적 전통성의 명맥을 이으며, 조국광복을 위해 항일투쟁하던 여러 애국선열들의 묘역을 조성하였고, 김구주석도 사망후 효창원에
안장 되었다.

그리하여 효창원은  대한민국 광복후 처음으로 " 일제침략과 일제시대에 민족을 위해 몸을 바치신 여러 항일독립애국선열들이 한곳에 있게 됨으로서 공식적인 근현대사의 중요한 애국선열들의 신성한 묘역"이 되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라면  민족과 나라를 위해 모든 삶을 바치신 애국선열들에게 감사하고,
애국선열들의 삶과 그들의 정신들을 본받을것이며 사랑할것입니다.
이렇게 효창원은 민족정기의 산실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겠다.

◈ 수난사

1894년 5월 청일전쟁 발발 직전 우리나라에 불법으로 침공한 일본군의 주력부대인 대도(大島) 혼성여단이
지금 효창운동장 남단의 솔밭에 주둔함으로부터 그 좋은 경관이 허물어지기 시작 하였습니다.

1924년 6월에는 일제가 효창동의 일부를 떼어서 효창공원을 개설 하였으며,   패망 직전인
1945년 3월에는 문효세자 이하의 상기 묘소를 모두 경기도 고양군 원당읍 원당리 서삼능 경내로 천장함으로써    
           효창원은 사실상 종말을 고하는듯했으나.
1945년 광복이후 옛 효창원자리에..우리민족의 역사적 전통성을 이어받으며 조국광복을 위해 항일투쟁을 하신  여러 애국선열등과 김구 선생의 묘소가 수많은 대중들로부터 지지을 받으며 이곳에 위치하고 됨 으로서,
그간 민족통일의 방책 등에서 이견을 보이던 이승만 지도하의 당시 집권세력에서 심히 못마땅하게 여기였는데, 그리하여 선열묘소를 교외로 옮기려는 움직임이 부단히 있었는데, 그 일단으로
1959년 봄부터 제2회 아세아축구대회 유치를 구실로 묘소 바로 앞에 효창운동장 개설을 추진 하였습니다.
이에 독립투사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옹 등이 중심이 되어 효창공원선열묘소보존회(孝昌公園先烈墓所保存會)가 결성되고, 언론사를 비롯한 각계의 여론이 비등하여 묘소 이전은 보류되었지만, 효창운동장은 약 15만 그루의 나무와 숲 속의 연못 및 섬까지 희생시키고 끝내
1960년에 개설되었다.

이러는 동안 5·16 군사쿠데타 이후 또다시 선열묘역을 경기도 고양군 신도읍 용두리 서오릉 부근으로 이전하려고 추진하였으나 역시 유족과 사회각층의 반대로 보류되었다.  
이같은 경로를 거쳐

1972년 서울시에서 효창공원 조경사업(묘지 진입로 및 석계단 설치·외곽 주변정리·수목 조성 등)을 10개년 계획으로 시작하는 동시에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 되었으며 (이는 1981.6 유료개방 때까지 계속),
1977년 7월에는 건설부에서 효창공원으로 고시 하였다.
1984년 12월에는 서울시의 협조로 각 묘소 앞의 묘표석(墓表石)을 새롭게 개수(改竪)하였다.
1989년 11월 의열사(義烈祠) 및 창열문(彰烈門)이 건립되고 묘역 확장과 정비가 대충 마무리되었으며,
1989년 6월 사적 제330호로 지정되었다.


- 출처 : 문화저널21 효창공원 성역화 올바로 하라 2007. 4. 9

효창원(효창공원의 원래 이름)은 예전 울창한 숲으로 가꿔져 여의도 면적에 3분의 2 혹은 절반 크기로 추정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효창원은 1894년 5월 청ㆍ일 전쟁을 대비한 일본군 3천 병력이 만리창(용마루재)에 야영하며 숲을 파헤친 것을 시작으로, 1906년에는 도원동에 몸 파는 유곽촌을 만들고, 숲 곳곳에 골프장과 공원을 비롯하여 건물을 짓는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만신창이가 되기에 이르렀다.

일제에 이토록 상처 입은 '효창원'은 해방 뒤 그 일제와의 투쟁에 몸을 바친 독립운동가들 특히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켜낸 분들의 묘역으로 거듭남에 따라 해방공간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참배객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장소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1946년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 유골을 일본에서 봉환했고, 안중근 의사 허묘도 마련하였다. 또 1948년에는 임시정부주석 이동녕과 동 비서장 차이석의 유골과 그해 국내에서 서거한 임시정부 군무부장 조성환의 시신도 같은 장소에 안장됐다. 그 뒤 1949년 7월 5일 안두희의 흉탄에 서거한 김구 주석을 동지들과 같이 하겠다는 유언에 따라 안장해 효창원은 7위 선열묘역이 되었다.

그런데 이후 김구 주석을 암살했다는 의심을 받고, 친일인맥을 바탕으로 정권을 꾸린 이승만 정부는 효창원을 눈엣가시로 생각하여 경찰이 길목을 막고 묘소참배를 불온시하는 일을 벌였다. 이에 참배객은 끊기고, 유가족까지 검색 당했다. 이러자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효창원 주변 여관에 들었다가 통금이 풀리는 즉시 경찰이 없는 새벽에 참배하고 줄행랑치는 도둑참배가 벌어졌다고 한다.

효창원의 박해는 이후로도 계속 되었는데 1959년 서울시가 제2회 아시아축구대회를 위해 축구장을 세웠으며, 1966년 김구 주석묘 남서쪽 20m 거리에 대형 테니스장이 설치되어 2001년 백범기념관이 착공될 때까지 사용하였다.

또 1968년에는 김구 주석묘와 삼의사묘 사이에 5500평 골프장 설치하려 했고, 1969년 효창원묘역 정수리에 해당하는 김구 주석묘 북쪽 35m 거리에 북한반공투사위령탑이 세워졌으며, 1972년 김구 주석묘 서쪽 60m 거리에 대한노인회중앙회 건물이 들어섰다. 그뿐만 아니라 그 옆에는 회관 건립에 대한 육영수송덕비가 세워졌고, 묘소 틈새 곳곳에 정자를 짓고, 30여 가지 운동시설을 설치하였다.

이런 효창원에 대한 박해는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자행된다는 게 ‘효창원을 사랑하는 사람들(회장 차영조)’의 생각이다.

국가보훈처는 광복60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효창공원 독립공원화 조성사업’을 추진하면서 2005년 12월 20일 건축설계공모를 위한 건축설계경기 과업설명서에서 효창원 독립공원화의 목적을 “효창공원이 ‘효창운동장 등 이질적인 시설물’들과 혼재돼있어 독립공원 성역화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왔으므로 효창공원을 민족성지로 조성해 민족정기를 고취시키기 위함”이라고 명시했다.

그러나 건축설계경기 과업설명서에는 기존운동장을 철거한 뒤 새로운 국제규격의 축구경기장과 부대시설을 건립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게다가 애국선열 묘역의 성역화사업과는 어울리지 않는 반공기념탑과 대한노인회관, 놀이터 등 기존 시설물에 대한 처리 문제는 언급돼 있지 않다.

이에 ‘효창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2006년 6월 26일 펼침막을 내걸고 백범 추모식 참석자들에게 성명서를 작성 배포하여 운동장 철거없는 효창원 성역화는 선열을 능멸하는 일이며 국민세금을 낭비하는 일임을 알리고 원상회복 차원의 성역화가 이루어져야 함을 주장하였다.

효창원 선열 관련 단체들도 계속해서 국가보훈처의 사업 추진에 이의를 제기하였으나, 국가보훈처는 이미 책정된 예산집행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래 계획을 약간 수정하는 선에서 사업을 강행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효창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주변에 뜻을 같이하는 개인 및 단체들과 함께 효창원 성역화의 올바른 방법을 찾아보고자 국민토론을 개최한다.

효창원 성역화 문제 국민토론 “효창원 성역화 문제 어떻게 할 것인가?”는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의 사회로 진행되며, ‘효창원을 사랑하는 사람들’ 김용삼 부회장은 “효창원 수난의 어제와 오늘”,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은 “문화재로서의 효창원 묘역”을 이야기 한다.

이어서 단국대 역사학과 한시준 교수는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효창원”, 한겨레신문 홍세화 기획위원은 “독·불과 한·일의 역사 관계 그리고 효창원 묘역”, 심산사상연구회 김시업 회장은 “효창원 성역화사업의 향방”이란 제목으로 발표한다.

토론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애국선열을 위한다며 광복 60년 기념사업이라는 미명하에 수백억 원의 국민세금을 들여 이루어지는 사업이 원상회복 차원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효창원 애국선열들의 정신을 훼손하는 결과가 될 것이므로 차라리 나중을 기약하고 지금 진행시키려는 사업은 중단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이 토론회는 효창원성역화 문제가 몇몇 단체나 지역에 국한한 문제가 아니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적 가치와 위상 그리고 선열에 대한 올바른 예우에 관한 이 겨레 모두의 문제이므로 국민의 의견을 총합해서 올바르게 전개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으기 위한 첫 시도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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