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터 졸업생들을 위한 공간,

(2012-02-25 13:59:15)

이재훈

'11문집 : 바람이 오래 머무는 골목

바람이 오래 머무는 골목

                                                    04 정지문

1.
겨울이 마른 살갗을 매만지는 날엔
바람이 오래 머물던 골목에 서서
바람결을 담은 잎맥을 가만히 쓸어내린다

그곳에는
아비가 바람든 무처럼 야위어 가고
평생을 떠돈 작은아비가 굳게 문을 닫고 있다

잃어버린 세탁소 아이가 준 반지와
레고 인형 팔 한 짝이 나뒹구는 골목
누구나 이곳엔 바람과 함께 흘러들었다

어른들은 바람을 안주삼아 소주를 들이켰고
어김없이 골목 끝에 서성이다 주저앉는다
코끼리가 순간 균형을 잃듯이

우린 바람을 타고 멋지게 골목을 떠났으나
해 밑에 스미는 땅거미 따라 돌아와야만 했다
그렇게 바다는 멀었고 우리의 코끝은 짜기만 했다
                            ..

2.
바람처럼 왔으나 바람처럼 떠나기엔
바람이 골목에 너무 오래 머물렀다
흘러간 만큼 흘러들어오는 그 지루함

골목이 복잡한 만큼 생활은 가벼웠고
생활이 단순한 만큼 우리의 삶은 무거웠다
그것을 지탱하는 위태로움이 전부인 사람들

그곳에는
어미의 상여를 타고 나간 효준이 형이 여전히 흙은 파먹고
골목에 묻힌 용희가 땅따먹기를 하고
어미 찾아 집나간 기찬이가 숨바꼭질을 하고
늦도록 어미 오기만을 기다리던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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