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건강에 특히 민감한 아내의 반 강요(?)로 산행을 하고 있다. 잦은 국내외 출장 때문에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가끔 아내와 함께 도시를 벗어나 산길을 다녀보면 그 후련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잠시라도 둘레에서 벗어난다는 후련함이 있기 때문이다. 산행을 하면서 나는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길섶에 아무렇게 피어 있는 들풀이나 들꽃을 관찰하는 것인데 그 꿋꿋함이 참 마음에 든다.
중국 고전 「후한서」에는 ‘질풍경초’(疾風勁草)라는 사자성어가 나온다. ‘거센 바람이 불 때 강한 풀이 구분된다’ 혹은 ‘질풍에도 꺾이지 않는 억센 풀’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세상사에 비유하자면 ‘제 아무리 거센 세상 풍파에도 흔들림 없이 이에 맞서 과감하게 도전하는 사람’쯤 되는 말일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위기에 봉착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생의 역경에 처해서도 의연하게 자기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많은 고통을 안겨주지만 나중에 얻을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들풀이나 들꽃에서 얻을 수 있는 인생사이니 자연은 내게 큰 풍성함을 주는 것 같다. 내가 굳이 보잘것없는 산행과 들꽃을 두고 거창한(?) 인생사를 얘기한 것은 각박한 현실에서 한번쯤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세상에는 항상 양면이 있다. 보는 시각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잠시라도 현재의 나를 벗어난다면 긍정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은 순응하는 법을 가르치고, 여행은 긍정적인 사고의 이로움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며칠 전 신문을 보니 국내 1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 31명 가운데 지난 10년 동안 매년 휴가를 갔다고 응답한 사람은 6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올해도 아직 휴가계획을 잡지 못했다는 사람이 많다.
“바빠서 휴가를 갈 틈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때는 외국계 기업의 CEO가 한달간 여름휴가를 갔다는 소식을 듣고 부럽기도 하고, 왜 국내 기업 CEO는 그렇게 하지 못할까 궁금하기도 하다.
‘휴’(休), 즉 ‘쉰다’는 말은 한국 기업 CEO들에게는 ‘회사 문을 닫는 것’ 혹은 ‘경영상의 실패로 영원히 쉬게 되는 것’이란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되기 쉬운 것 같다. CEO가 없으면 경영상의 큰 문제가 일어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자리를 지킴으로써 책임을 다하려 한다.
일상에 지쳐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고 현실에 맞춰가야만 하는 CEO들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쉼’은 문답과 같은 것이다. 즉 스스로 묻고 답을 구하는 것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현 시점에서 ‘나는 지금쯤 어디에 와 있는가?’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해보자. 내면 깊은 곳의 의문을 끌어와 중간 중간 맺혀 있는 매듭을 풀듯 방안을 이리저리 고심해 보는 과정이 중요하다.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질 수 있는 정신적인 여유가 무엇보다 중요하며, 자신의 삶에 대해 만족하는 자세를 발견하는 것이 앞날의 원동력이 된다. 휴식을 통해 가슴을 짓누르는 모든 것들을 다 비워낼 때 새로운 무언가를 채울 또 다른 공간과 여유가 생겨날 것이다.
휴식이 현실을 해결해 주지는 못할지라도 당면한 과제들에 대한 실마리를 제시해 줄 수는 있을 것이다. 쉼으로써 나를 재충전할 수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면 그 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을 것이다.
산적한 많은 업무와 결정들에서 한번쯤 벗어나자. 스트레스와 과로로 지친 육신을 쉬게 하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내가 아닌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다. 재충전이 바로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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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2004년7얼27일자 칼럼기사입니다 휴가철을 맞아_bleen/images/i_list.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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